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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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산인 고려동유적지의 자미화(紫薇花)

 

 

 

함안 고려동 유적지(咸安 高麗洞 遺蹟址)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지이다.

고려 말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자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담장을 쌓고 살았던 곳이다. 새 왕조가 들어서자 이오는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으로 들어가 산간벽지의 띠[茅]만 우거진 숲속에 백일홍이 만발한 곳을 살 곳으로 정하였다.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56호 고려동유적지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성균관진사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은거지 주위에 담을 쌓고, 담 밖은 새 왕조의 땅이라 해도 담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지라는 것을 명시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 고려 유민들이 우물을 파고 논밭을 만드는 등 터전을 일구어 자급자족하였다 하여 고려동() 또는 장내동()이라 불렸다.

 

 

 

 

 

선생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았고,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서 벼슬하지 말 것과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담 안에 주거와 우물 전담 등을 마련함으로써 후손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터를 닦았다. 이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후손들은 600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고 고려동이라는 이름도 전하고 있다.

 

 

 

 

이곳은 자미단이라 하며 고려동유적지의 보호수인 배롱나무가 있는 자미단입니다.
고려동 유적지의 배롱나무는 연륜에 비해 잘 발달된 수관과 아름다운 수형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자미나무라고도 불리며, 이 나무에서 피는 자미화는 고려 말기 이오 선생의 충절을 상징하는 꽃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재령 이 씨 후손 30여 호가 모여 살면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표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었으나, 이들 건물은 한국전쟁 동안에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었다.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만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으나, 그마저 200여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배롱나무는 흔히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부르는데,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가을에 모두 지는 때까지 100여 일 걸린다 하여 백일홍이라 한다. 낙엽 활엽 소교목 부처꽃과로 줄기는 구불구불하고 매끄럽고, 가지 끝이 부챗살처럼 퍼지는데, 대개 ‘V’ 자(字) 형으로 자라는데, 꽃말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함”이란다. 같은 이름의 초본성 백일홍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곳 고려동 유적지의 배롱나무는 많은 사진인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며, 매년 이때쯤 찾아가는 한 곳이기도 합니다. 배롱나무는 본래 당나라 때부터 관청의 뜰에 심어두고 보기를 좋아했다고 하며, 배롱나무를 자미화(紫薇花)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2024/ 7/ 27일 오후 함안 산인면에 위치한 고려동유적지를 방문하여 아름다운 배롱나무 꽃을 감상했습니다.

이곳은 매년 자주 찾는 곳이므로, 오늘은 간단히 몇 장의 사진만을 촬영했습니다.

 

 

 

함안 고려동유적지

고려 유민의 충절이 깃든 함안 고려동 유적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조선시대 고려 유민들의 마을. 시도기념물. 1982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이 곳은 고려 말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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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고려동 유적지 자미화

함안 산인 고려동 유적지 자미화 (배롱나무꽃)   고려 말에 성균관의 진사였던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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