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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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항포해전의  승리를 도운 기생 월이 이야기

 

기생 월이는 임진왜란 당시에 당항포대첩에서 승리를 이끈 숨은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설화는 지혜로운 기생 월이가 일본 간첩이 만들어 놓은 지도를 고쳐 당항포대첩이 승리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월이의 행동은 진주의 논개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위기 상항에서 충성심과 용기를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항포대첩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당항포에서 이순신 장군이 승전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순신은 당항포의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왜군을 속이고 패배 시켰습니다. 기생 월이의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당항포대첩축제와 애국정신을 추모하는 월이축제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간첩이 만든 지도를 고친 기생 월이

 

옛날 고성 무학리에 한 주막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한 나그네가 주막집에 찾아왔다. 그는 전에도 온 적이 있는 손님이었다. 지혜로운 기생 월이는 나그네가 전에 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나그네는 조선을 염탐하러 온 간첩이었다. 간첩이 술에 몹시 취하여 고꾸라지면서 품속에 있던 보자기가 튀어나왔다. 월이가 열어보니 바닷가와 육지가 자세히 그려진 지도였다. 월이는 나그네가 간첩임을 알아채고 붓으로 지도를 고쳐 조작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지도만 믿고 당항포에 침입한 왜군은 물길에 갇혀 이순신의 군대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했던 당항포대첩


경상남도 고성군의 당항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승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바다를 향한 입구가 좁으나 포구 방향으로는 굴곡이 있고 넓으며 잔잔하다. 이순신은 이러한 당항포의 지형 조건을 이용하였다. 왜군의 배에 쫓기는 척하며 당항포 포구로 유인하여 몰아넣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우리 군사들에게 공격을 지시하였다. 왜군의 배 50여 척은 꼼짝없이 갇힌 채 맥없이 패배하게 되었다. 왜군은 몰래 염탐하여 만든 지도에 의지하여 침범했다가 이런 참사를 당한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기생 월이의 이야기가 고성군 일대에 전해지고 있다. 고성군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당항포대첩축제와 기생 월이의 애국정신을 추모하는 월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기생 월이가 보여준 충성심과 용기


이 이야기는 기생 월이가 일본 간첩이 만들어 놓은 지도를 고쳐 당항포대첩이 승리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이의 행동은 진주의 논개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충성심과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성군 일대에서는 월이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남겨진 기록은 없다. 다만 당항포에서 왜군이 속았다고 해서 당항포 일대의 바다를 ‘속싯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당항포대첩에서 겨우 살아남게 된 왜군이 육지로 도망한 곳을 ‘도망개’라고 불렀으며, 도망간 왜군이 멀리 가지 못하고 거의 다 잡히게 되었는데 그곳을 ‘잡안개’라고 불렀다고 하여 당항포대첩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있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했던 당항포대첩의 고성 당항만

 

고성사회에는 오래전부터, 정확하게는 420년 전부터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온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기생 월이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구전이란 구록에 비해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나 그렇지가 않다. 구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것이기 때문에 잡초과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 있어 거기에는 꾸밈이나 거짓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반면에 때론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서 첨삭하여 왜곡되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기도 하는 것이 기록문화의 결함이 아니던가.

 

 

 

 

고성 당항만 해안둘레길

오늘은 오래전 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기생 월이의 행적을 살펴보고
이순신 장군의 승전보 당항포 대첩의 숨은 영웅이 된 기생월이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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