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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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사씨남정기≫소설 속의 등장 인물 이야기 야외전시장

 

남해는 조선 시대에 대표적 유배지였다. 자암 김구는 〈화전별곡〉에서 남해를 ‘일점선도(一點仙島)’ ‘산천기수(山川奇秀)’의 땅으로 노래했다. 자암이 남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면, 서포 김만중은 절해고도인 노도에 유폐돼 창작열을 불태웠다. 수려한 명소가 많은 남해에서 노도가 알려진 건 전적으로 김만중 덕분이다. 김만중은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3년 남짓 노도에 살다가 55세에 숨을 거뒀다. 남해군은 김만중의 유적과 이야기를 엮어 노도를 문학의 섬으로 조성했다. 김만중문학관, 서포초옥, 야외전시장, 작가창작실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 문학 여행지로서의 제격이다.

 

노도 서포초옥

노도 야외전시장은 서포초옥에서 150m 거리에 있다. 약간 힘드는 언덕길로 올라가야 하나 살금살금 올라가면 금방 도착이다. 야외전시장에는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으로 되어있고 등장 인물 조형물들로 이야기를 엮어 놓은 곳이다.

 

[야외전시장] 구운몽(九雲夢)원

 

구운몽의 구(九)는 소설의 주인공인 성진과 팔선녀를, 운(雲)은 인간의 삶을 한낱 구름에 비유, 몽(夢)은 말 그대로 꿈이라는 뜻이다.


육관 대사가 아끼는 제자였던 성진은 동정호의 용왕이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시고 돌아오다 팔선녀를 만났고 속세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결국 육관 대사에게 불려가 인간 세상에 유배되어 양소유로 태어나게 된다.

양소유로 인간 세상에서 태어난 그는 과거를 보러 집을 떠나는 길에 화음 현진어사의 딸 진채봉을 만났고 서로의 마음을 시를 지어 확인하고 혼인을 약속한다. 이후에도 출세를 하여 총 8명의 처와 첩을 두게 되는데, 양소유는 인간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여러 명의 처와 첩을 거느리고 이름도 떨치는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양소유는 결국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한바탕 꿈에서 깨어나 본래의 자신(성진)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고 결국 극락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구운몽의 줄거리가 이해가 안되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 바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5948

 

구운몽(九雲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작품의 기본설정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꿈 속에서 실현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 속의 일이 허망한 한바탕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이는 김시습(金時習)의

encykorea.aks.ac.kr

 

 

 

 

 

 

 

 

[야외전시장]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원

 

 

 

보이는대로 대충 찍어 왔드니 스토리 1~9 까지가 빠져 버렸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보충 촬영할까 합니다. 

 

 

 

대충 찍어 왔드니 리뷰하면서 보니 빠진것이 많습니다. 다음에 빠진 부분 보충하겠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던 김만중은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대표적인 작품 “사씨남정기”를 완성시켰습니다.

“사씨남정기”는 숙종, 인현왕후, 장희빈을 비유하여 지은 것으로, 숙종과 장희빈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는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라는 노래가 불릴 만큼 장희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으며 여기서 장다리는 장희빈을, 미나리는 인현왕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당시의 최고 인기소설이 되기도 했습니다. 훗날 숙종이 우연히 이 작품을 읽은 뒤, 마음을 돌려 ?아냈던 인현왕후를 다시 궁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노도산 정상의 전망대 정자

야외전시장에서 촬영을하고 정상 정자가 있는것 같았는데 올라가보자 하고 올라갔습니다.
정상까지는 그리 멀지않은 거리였습니다.

 

정상 전망대

그리움의 언덕 전망대 입니다. 말이 전망대지 관리가 잘 안되어 숲으로 가리어 조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전망대에서의 조망

바로 밑쪽이 야외전시장이며 멀리 수평선과 풍경이 일품입니다. 날씨만 맑았더라면 더 좋은 일품도 가능하였을 터인데...

하산하는 길 조망

 

 

김만중 허묘를 올라왔던 돌계단

서포 김만중 허묘를 둘러보기위해 올라왔던 돌계단 내려다 보니 까마득 하다 여기서 다시 90도를 꺽어 이런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빈 공터에 비석 하나와 동그랗게 돌이 둘러싸여 있는 곳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서포 김만중 허묘

서포 김만중은 유배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점점 몸과 마음이 야위어 결국 1692년 4월에 그리운 어머니 곁으로 떠났습니다. 이때 잠시 뉘여졌던 곳이 이 곳 허묘입니다. 허묘의 표석에는 " 김만중의 무덤자리 서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숙종 18년 1662년 4월 부터 동년 9월까지 묻혔던 곳"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노도 창작실

푸른 바다, 맑은 공기 마시면 창작활동이 술술 풀릴 듯한 곳입니다.

노도창작실

내부를 살펴 볼려고 하니 철저히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폼으로 지어놓은 작가들의 창작실인가 보다?

앵강만 바다건너 설흘산(482m)을 바라보고....

노도 창작실 끝에서 조망한 앵강만 건너편 설흘산, 끝머리 자락에 가천 다랭이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12:00 출항하는 배시간이 바빠 빠른 걸음으로 선착장까지 달려가 벽련항으로 귀항하여

다음 코스로는 금산 보리암으로 갈 예정입니다. 보리암에서 만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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