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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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이 예쁜 안동 병산서원 그리고 체화정

올해는 패스하기로 한 '안동 병산서원'과 '안동 체화정, 지난해 다녀온 사진을 랜선으로 만나 볼까 한다.

2020년 8월 13일 성주성밖숲 촬영을 마치고 안동으로 이동 병산서원을 거쳐 체화정 까지 장거리 출사였다.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風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

 

 

풍천면 병산리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모태는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안동부 풍산현에 있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고장에 왔을 때 면학하는 유생들을 가상히 여겨 내려준 토지 8백 두락을 받기도 했다. 조선조인 1572년에 류성룡이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불에 탔으나 광해군 2년(1610)에 류성룡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를 중심으로 한 사림에서 서애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여 사묘인 존덕사를 짓고 향사하면서 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은 것은 철종 14년(1863)의 일이며 1868년에 대원군이 대대적으로 서원을 정리할 때에 폐철되지 않고 남은 47곳 가운데 하나이다.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에 가호가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에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니, 서애 선생께서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 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만대루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정면 7칸의 누각으로 휴식과 강학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기둥과 병산의 절경, 그리고 흐르는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한국화 한 점 속에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듯한 병원서원의 특별함을 만대루에서 누려봅니다.
만대루에 앉아 바라보는 승경은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사람을 취하게 한다. 휘돌아가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병산(甁山)은,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이라는 뜻일 게다.

 

 

 

달팽이 뒷간으로 병산서원에 오면 꼭! 봐야 하는 핫플이죠. 진흙과 돌로 쌓은 담으로 둥글게 감고 있어 굳이 출입문을 달지 않아도 안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거!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 존덕사

 

 

병산서원 존덕사

 

 

병산서원 존덕사 앞 보호수 배롱나무

 

병산서원 존덕사 앞 보호수 배롱나무

 

사당인 존덕사는 류성룡과 류진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정기. 비정기 제향 의례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다.

존덕사의 문은 잠겨 있지만 양 옆의 보호수인 배롱나무는 풍성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내삼문 앞 배롱나무가 수령이 380년이나 된 보호수로서 나무 둘레는 0.8m이다.

 

 

 

병산서원 솟을대문 복례문

 

 

병산서원 솟을대문 복례문

 

 

병산서원 솟을대문 복례문

 

 

 

입구의 대문인 復禮門(복례문). '예를 다시 갖추는 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장을 추스르며 마음까지 단속하던 옛 선비의 기풍이 느껴진다.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복례문을 나서며 뒤 돌아보는 발길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올해도 한번 찾아 볼걸 그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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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체화정

안동 체화정(安東 棣華亭)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2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건축물이다.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5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영조 37년(1761)에 진사 만포 이민적이 세운 정자로 학문을 닦던 곳이다. 그 후 순조(재위 1800∼1834) 때 국가에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마을에 정문을 세우는 정려를 받은 이한오 선생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이민적 선생이 그의 형인 옥봉 이민정 선생과 함께 살면서 우애를 다지던 장소로 유명한데, 이로 보아 정자 앞 연못의 이름을 '체화지'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체화'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 연못에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인 방장, 봉래, 영주가 있다.

 

 

 

안동 체화정 (安東 棣華亭)

 

안동 체화정 (安東 棣華亭)

 

안동 체화정 (安東 棣華亭)

 

안동 체화정 (安東 棣華亭)

 


내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배롱나무꽃도 화려하지는 못했고 이 연못의 반영이 더 아름다운 곳인데 코로나19 때문인지

 

부유물 청소도 아니해서 나타나질 아니했다.


좋은 작품은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들에게 맡기고 안동 병산서원과 체화정 출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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