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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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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시천면 산천재·남명기념관 아름다운 배롱나무꽃들

 

 

덕산서원 탐방에 이여 그리고 산청 덕산 남명 조식 기념관과 산천제를 둘러보았습니다.

남명기념관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위치하며 산천재는 남명기념관 건너편에 자리합니다.

남명 조식 선생은 문종때, 을묘 사직소 등 당시 국종의 문란을 질타하여 왕의 말이 법이었던 조선시대에

왕을 고아라고 하고 왕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궁중의 일개 과부라고 하여 조정과 사림을 격동시키기도 하였고

할 말은 하고 살고. 제대로 정치하지 않는 정부에게는 그대로 일침을 가하는 그런 분이셨더라구요.

 

 

남명기념관 정문 성성문(性性門)입니다.

남명 조식의 탄생 500주년을 맞은 2001년 설립을 추진해 2004년 8월에 문을 연 곳이 남명기념관이다. 남명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유품과 관련 자료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남명기념관은 산천재 맞은편의 2차선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옥돌로 만들어 세운 남명 조식 선생의 동상
기념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옥돌로 만들어진 남명선생의 동상이 지리산을 등지고 서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것으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잘 나타내었다.

여재실은 문중에서 선생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묘가 있는 곳이다.

 

 

 

 

 

남명 조식선생의 기념관입니다.

남명 조식은 합천에서 태어나 30세에는 처가가 있는 신어산, 48세에는 다시 합천, 61세에는 산천에서 제자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성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의 폐단을 익히 알고 이를 없애고자 제자들에게 학문의 다양성을 강조하여 천문지리 의학 국마 진법 등의 학문도 가르쳤고 실천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남명기념관 좌측의 배롱나무 꽃입니다.

덕천서원은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위치해 있는데 1920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하며

선비들의 학문정진과 그 실천의 장인 것입니다.

 

 

 

 

 

남면기념관 우측의 배롱나무 꽃입니다.

학교, 사회에서 배우고 있는 것 들이 정녕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인가 의문을 품게 되는 요즘,

사회지도층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는 이 시기에도 남명사상은 꼭 필요한 것이지 싶습니다.



 

 

 

 

남명기념관 주차장에 핀 회화나무 꽃이 비바람에 떨어져 바닥에 깔았습니다.

 

 

 

 

남명기념관 도로 건너편에 있는 산천재입니다.

산청에 내려와 후진을 양성하던 산천재와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

산청에 자리한 남명 조식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천재다. 조식선생이 61세 때인 1561년 산청군 덕산으로 내려와 산천재를 지었다. 규모는 앞면 2, 옆면 2칸으로 1818년에 고쳐 지었다. 산천재에서 갈고닦은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다 1572 2 8 72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운명하게 된다.

 

 

 

 

 

 

산천재는 현판이 2개나 달려있다. 전서체는 조윤형의 글씨이고, 해서체는 이익회의 글씨다. 

이중 전서체 글씨가 멀리서도 잘 보이게 매달려 있다.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회화적인 필체가 돋보인다. 

뫼 산(山)자는 조식 선생이 바라보던 지리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생명력이 넘친다.

 

 

 

 

 

산천재 내의 재단에는 남명학의 요체만 걸려있다. 

안으로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敬)이요, 밖으로 올바름을 실천 단행하는 것이 (義)이다.

 

 

 

 

 

산천재 출입문입니다.
우측의 배롱나무꽃도 아름답네요.

 

 

 

 

 

산천재 맞은편 배롱나무꽃 풍경입니다.

 

 

 

 

 

산천재 담장 안 정원에 핀 배롱나무 꽃입니다.

 

 

 

 

 

산천재 정원 담장 밖 배롱나무 풍경입니다.

남의 떡이 크 보인다드니 담장 밖 배롱나무꽃이 더 붉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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