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남명 조식 유적지 탐방
산청 남명 조식 유적지 산천재 탐방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오늘은 산청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을 둘러본다
남명 조식 선생은 산청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태어난 곳은 이웃한 합천군 삼가면 토동이지만, 61세에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72세이던 1572년 2월 산천재에서 운명했다. 11년간 지역 사람으로 살면서 이곳에 묻혔다. 남명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청에 내려와 후진을 양성하던 산천재와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
산청에 자리한 남명 조식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천재다. 조식선생이 61세 때인 1561년 산청군 덕산으로 내려와 산천재를 지었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1818년에 고쳐 지었다. 산천재에서 갈고닦은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다 1572년 2월 8일 72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운명하게 된다.
산천재는 현판이 2개나 달려있다. 전서체는 조윤형의 글씨이고, 해서체는 이익회의 글씨다. 이중 전서체 글씨가 멀리서도 잘 보이게 매달려 있다.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회화적인 필체가 돋보인다. 뫼 산(山)자는 조식 선생이 바라보던 지리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생명력이 넘친다.
산천재 내의 재단에는 남명학의 요체만 걸려있다.
안으로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敬)이요, 밖으로 올바름을 실천 단행하는 것이 (義)이다.
산천재 앞에 자라는 매화나무는 선생이 산천재가 완성되던 1561년에 직접 심었다고 전해온다. 수령이 450년이 넘은 매화나무로 남명매라 불린다. 정당매, 원정매와 함께 산청 3매로 불리는데, 매화가 만개하는 3월 말이 되면 짙은 매향을 맡으려는 수많은 탐매객이 찾아든다.
산천재 뒷 뜰의 정원의 배롱나무꽃도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남명 선생이 돌아 가시자 선조 대왕께서 내리신 제문을 새겨 세운 비석이다.
이상 사리 산천재를 둘러 보았고 다음은 산청 조식 유적지 남명기념관 등을 둘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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