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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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백의종군로 산청 도보탐방길 1코스 고난의 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의 길 제4코스 산청구간, 합천 율곡부로 가던 길에 하룻밤 유숙하던 이사재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李舜臣 將軍, 1545~1598)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계락과 원균(元均, 1540~1597)의 모함으로 인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 1597년(선조 30)  1월에 옥고를 치르고 판부사 정탁(鄭琢)의 구원으로 4월 1일 도원수 권율(權慄, 1537~1599) 휘하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 할 것을 명 받아 도원수부(都元帥府)가 있는 합천으로 가는 도중 단성현 사월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여 산청 단계변을 거쳐 합천 초계로 향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하면서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 율곡부로 가던 길에 하룻밤 유숙하던 곳이다.
정유년 (1597년) 6월 1일 이순신 장군은 억수처럼 내리는 빗속에서 청수역을 떠나 단성에 이르러 박호원의 농사를 짓는 이곳 노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의 유력한 집안인 박호원의 내력을 알고 이곳에서 유숙했던 것으로 축척이 된다. 그러나 밤새도록 내리는 빗속에 방마저 좋지 않아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장군은 아침 일찍 삼가현을 향해 출발하였다. 박호원은 세종 임금 때의 명재상인 황희 정승의 5대 손녀와 결혼한 박이의 아들로 본관은 밀양, 호는 송원당이다. 그는 1562년 (명종 17년) 임꺽정 등 도적을 진압한 공을 세우기도 했고 호조판서, 참판을 엮임 하기도 했다. 이사재는 박호원의 재실이며 현재 이 지역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산청 도보탐방길 1코스 고난의 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묘락과 선조임금의 오해로 직책을 박탈당하고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정탁의 청원으로 정유년 (1597년) 4월 1일 출옥하여 권율장군의 취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서울을 떠나 합천으로 향한다. 제1코스 고난의 길은 도원수 권율장군 진영으로 가는 길과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한 후 남해안의 정찰을 위해 떠나던 길이기도 했으며 장군은 옥고를 치른 아픈 몸과 어머님의 죽음이 겹쳐 가누기 힌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비 내리는 긴 여정 중 산청군 단성면을 지났기에 고난의 길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산청 여행중에 경남 산청군 단성면 상동길 77 (단성면 사월리 1393) 남사예담촌 안쪽 유유히 흐르는 남사천 끼고 니구산 자락에  품고 있는 송월당 박효원의 재실 이사재를 탐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지정된 산청 남사예담촌'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 「이사재」 1857년에 지어진 대사헌 ·호조참판 등을 지낸 송월당(松月堂) 박호원(朴好元, 1527~?)의 재실(齋室)이다.

 

 

 

 

 

 

【박호원(朴好元, 1527~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밀양(密陽), 자 선초(善初), 호 송월당(松月堂). 할아버지는 광영(光榮), 아버지는 이(苡), 어머니는 황맹헌의 딸.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55년에 함경남도평사가 되었다. 1557년 홍문관부수찬이 되고 이어서 홍문관의 수찬·부교리, 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성균관전적 등을 거쳐 이듬해 용강현령으로 나갔다. 1560년 특명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이 되고 이어서 의정부의 검상·사인 등을 역임.

 

 

 

 

 

 

 

이사재란 이름은 공자의 고향 니구산(尼丘山)과 사수(泗水)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이곳 산 이름은 니구산이고 하천은 사수천으로 불립니다.

 

 

 

 

 

 

 

이사재 입구 정면에는 내문인 거유문이 있고 거유문의  현판은 거유(居由)는 거인유의(居仁由義) 즉, ‘인(仁)에 머물고
의(義)에 따른다 ‘는 맹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사재의 배롱나무는 200백 년 동안 살아낸 수령이 엄청 긴 나무들입니다.

이사재의 배롱나무엔는 연지리가 많습니다. 연지리는 남녀사이 혹은 부부애가 좋은 것으로 비유됩니다.

 

 

 

 

 

 

이나무의 연지리를 보는 연인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지리란 나무 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의 길 하룻밤 유숙하던 산청이사재( 山淸尼泗齋 )에서 내려다본 남사예담촌 전경입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산청 1코스 고난의 길의 하룻밤 유숙하던 이사재를 탐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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