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수로왕릉 능소화
능소화가 피어나는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김해 수로왕릉의
붉은 능소화가 먼저 떠오른다.
햇살을 머금고 담장을 타오르듯
흐르던 그 빛깔이...
올해는 유월의 마지막 날에야 문득 생각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놓쳐버린 시간들이 아쉽지만,
능소화는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계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진주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오후 2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남해고속도로에 올랐고,
김해 수로왕릉까지의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초여름의 햇살이 도로 위에 길게 드리워지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유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수로왕릉은
능소화가 한창 피어 오르는
계절의 빛을 고요하게 품고 있었다.

숭화문을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유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능소화가
오후 햇살을 머금은 채 나를 맞이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유월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이 시간 만큼은 능소화가
그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주는 듯했다.

찜통 같은 햇살이 김해를 감쌌던 날
나는 수로왕릉 앞에 멈춰 섰다.
오래된 돌담 위로 능소화가
붉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늘 아래 바람이 살짝 스쳤다.

능소화는 여름이면 수로왕릉 담장을 타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죠.

붉은빛의 능소화가 고즈넉한
왕릉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한국적인 정취를 자아냅니다.

능소화는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대부 가옥의
담벼락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꽃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왕과 왕비의 영혼이 잠든 수로왕릉의 분위기와도
유난히 잘 어울리는 꽃이 아닐까 싶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이 풍경 속에는
능소화가 품어온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이 조용히 스며 있다.

햇살은 바람에 젖은 듯 부드럽게 흘렀고,
수로왕릉 돌담 위로 능소화가 조용히 피어나 있었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기억처럼 내려앉은 붉은 꽃들이
고요한 능의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기울였다.

그늘진 담장 아래 나는 한참을 멈추었고,
바람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내 곁에 놓아두고 가는 듯했다.
사라진 시간이 그 꽃잎 사이를 지나,
'오늘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단지 돌과 흙으로 쌓인 무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시작이 잠든 자리였다.
가야의 시조 수로왕은 신령한 황조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 속 인물이고,
먼바다를 건너온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그의 왕비가 되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하늘과 바다가 맺어준 연이라 하니...


올해 수로왕릉의 능소화는 예전 같지가 않았다.
담장을 타고 흐르던 그 풍성한 꽃길이
올해는 조금은 힘이 빠진 듯 보였다.

화분에 따로 이식해놓은 능소화는
일찍 피었다가 금세 젖는 건지
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유월의 끝자락에 찾아온 수로왕릉은
예년의 그 화사함보다는
조용한 여름의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능소화가 이 담을 타오르는 이유도
어쩌면 그 기다림에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무덤 앞을 거닐며
영원의 사랑과 떠남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능소화는 해마다 붉게 피어나
그 옛이야기를 조용히 다시 들려준다.


🌸 능소화의 꽃말과 상징
궁녀 ‘소화’가 임금을 기다리며 생을 마감한 전설에서 유래해요.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능소화가 피어났다는 이야기로,
이 꽃은 간절한 기다림과 애틋한 그리움을 상징하게 되었겠죠

🏯 한국적 정서와 능소화
한옥과의 조화 :
능소화는 전통 한옥의 담장과 어우러져,
‘비움과 흐름’이라는 한국적 미감을 표현해요.
고요한 여름날,
능소화가 담장을 타고 피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들어내죠.
문학 속 능소화 :
이해인 수녀의 시 「능소화 연가」에서는
능소화가 사랑과 기도의 상징으로 등장해요.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라는 구절은
이 꽃이 지닌 감성적 깊이를 잘 보여줘요

정원의 연못은 수질 정화기가
멈춘 탓인지 물결없이 고요했다.
연꽃은 이미 한 차례 피었다 진 듯
연밥이 두어개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봉오리들이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를 내려놓자,
한동안 눈길을 두었던 능소화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프레임 속에서 집중하던 풍경은 이제 감각으로 스며들었고,
바람은 셔터 소리를 대신해 이야기처럼 귓가를 스쳤다.
수로왕릉 돌담을 타고 흐르던 꽃들은,
마치 아직 남은 여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붉은 꽃잎 하나가 조용히 발끝에 떨어졌고,
나는 그 순간이 사진보다도 더 선명하게
오래 남을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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