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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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군북폐역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기념관 탐방

 

 함안 군북폐역의 함안 역사를 품은 함안독립공원을 둘러보고 함안 출신으로 항일운동에서 큰 공로를 세웠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인 대암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을 탐방하였습니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은 일제강점기에 몽골에서 인술을 베풀고, 독립운동을 펼친 이태준 선생의 빛나는 업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중 한 명으로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의 역사, 우리 세대에 물려준 소중한 희생정신 등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21년 11월 개관하였습니다.

 

 

 

대암 이태준 사적비

[대암 이태준 기념관 탐방]

관람 시간 : 평일/휴일 9:00~18:00 (17:00 입장마감)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신정, 설, 추석 당일 휴관

주소 : 경남 함안군 군북면 지두 2길 50

 

대암 이태준 사적비

조국의 독립에 앞장 선 몽골의 신의 대암 이태준 

대암 이태준 선생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근대적 의료 교육기관인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 한 후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이일어나자 해외로 망명하였다. 중국을 거쳐 고륜(오늘날 울란바트로)에 정착하여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원하였다.
당시 몽골인들의 70~80%가 감염된 전염병을 헌신적으로 치료하여 몽골 황제의 어의가 되는 등 몽골인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또한 중국과 몽골을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교통과 숙식을 제공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거나 운반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의열단에 가입하여 우수한 폭탄 제조 기술자를 소개하는 등 의열 투쟁을 지원하였다. 

 

대암 이태준 기념관 입구

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태준 선생의 연도별 발자취로 군북면  출생인 선생의 성장 과정과 24살이 되는 1907년에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해 독립운동을 펼친 일대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의 출생과 생가터 성장과정 등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

이태준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 세상을 떠났지만 삶 자체는 매우 치열했다. 그는 1883년 함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906년 서울에 올라와 이듬해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 1911년 2회로 졸업했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

몽골에서의 항일활동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그는 1914년 몽골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어 당시 중국과 러시아, 만주, 한반도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처로 삼았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

기념관에서는 선생의 발자취를 터치스크린으로 구현했다. 함안에서 서울, 중국 난징, 몽골의 고륜(현 울란바토르) 등 알고 싶은 경로를 선택해 화면에 손을 대면 상세내용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사진과 텍스트뿐만 아니라 독립신문, 당시 교재로 사용했던 의학서적, 영상 등 입체적인 전시로 구성됐다. 이태준 선생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러시아의 백위파 부대에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기까지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

이태준의 짧고 극적인 일대기는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여운형은 1921년 가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러시아로 가던 중 고륜에 체류하게 되었다. 이 때 몽골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부르던 고륜의 남산(南山) 건너편 구릉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던 이태준의 묘를 찾았다. 여운형은 앞서 소개한 「몽고사막 여행기」에서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의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야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라고 이태준을 애도했다. 여운형의 여행기는 이태준의 묘가 있었던 사실과 그 위치를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대암 이태준 기념관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기념관

'사단법인 대암 이태준선생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태준은 학생 시절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도산 안창호를 만난 것을 계기로 비밀 결사조직인 신민회 산하 청년단체에 들어가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대암 이태준 기념관

한인사회당과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자금 운송, 폭탄 제조기술자 소개 등 지하활동을 하면서도 성병으로 고통받던 몽골인 70% 이상을 치료해 '붓다 의사', '신의(神醫)'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암 이태준 기념관

기념관에는 이태준 선생의 호적부와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 졸업증서 등 관련 전시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태준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의 원문과 해석본도 화면으로 볼 수 있답니다. 이태준 선생은 안창호의 권유로 비밀 청년 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고, 중국으로 망명 후 몽골에서 동의의국을 설립하여 의사로 번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던 선생은 1921년 몽골 고륜을 침략한 러시아 운게른 스테른베르그 부대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였는데요.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함안독립공원

함안은 경남에서 만세운동의 불길이 가장 먼저 타올랐던 곳입니다.
함안 독립공원은 옛 군북 폐역 부지를 정비하여 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으로 훌륭한 역사 교육의 장이며, 지역주민들과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나들이 장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함안독립공원

앞으로 기념관 옆의 철도공단 시설 건물을 리모델링해 함안 독립운동사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구심점이 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동차 길찾기

'경남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265-2'에서 '경남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14-54'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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