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청여(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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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회 하동 나들이 쌍계사, 악양 최참판댁 02

 

사우회 가을 나들이 1부에 이여 2부로 들어 왔습니다.
쌍계사 경내 대웅전 외에  금강문,  범종, 등 부속 건물들을 둘러 보고 이제 식사 시간도 가까워졌으니 
입구 쌍계교 부근 식당가로 내려가야 겠습니다.

※  사진은 2001년  '소니 디지털카메라''똑딱이'로 찍은 사진이므로  화질의 선예도가 떨어집니다. 미리 양해구합니다.

경내 한켠에 몇 백년이 됨직한 은행나무가 있는데 은행이 주렁주렁 열러 나무 밑에도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람쥐 청설무 등 겨울  양식이 될텐데... 주워가도 되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요즘 같으면 도로변 가로수에도 은행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인데 이 때만해도 보기가 어려웠죠.

살림꾼들인 여회원님들.... 은행 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쌍계사를 대충둘러 보고 되돌아 입구 화개천 쌍계교 식당가로 내려왔습니다. 

 

쌍계1교 식당촌입니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 가야지요

 

참게매운탕에 다가 은어튀김에 배불리 먹고 다음 코스로 이동합니다.

 

 

다음 코스는 악양들판과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진사댁을 찾았습니다.

대하소설 『토지』로 뜬 관광지가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이다. 악양 들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고택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전 최참판댁 연 입장객은 20만 명이 넘었다 한다.

 

최참판댁은 『토지』 무대로 유명하다. 『토지』가 어떤 책인가. 고(故) 박경리(1926∼2008) 선생의 대표작을 넘어 한국 문학이 이룬 성취라 일컬어지는 대작이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 8월 15일 완결했으니 집필 기간만 26년에 이른다.

 

권수로 모두 21권이고, 원고지로는 3만1200장이다. 등장인물은 700명을 웃돈다. 수차례 TV 드라마로 방영됐고, 영화·가극·창극으로도 제작됐다. 『토지』를 끝까지 읽은 독자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토지』를 모르는 국민은 정말 손에 꼽는다.

 

 

‘평사리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서 정겹게 맞이하고 지리산 자락에는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중턱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이 아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거장의 숨결을 느꼈다고 여기는 공간은 사실 TV 드라마 세트장이다. 2004∼2005년 방영된 SBS 드라마 ‘토지’ 세트장으로 이 건물을 지었다. 초창기엔 세트장이라고 명시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세트장 문구를 뺐다. 

 

하동군청은 최참판댁 뒤에 박경리문학관도 지어 가상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여기서 의문.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격동의 한국사가 『토지』의 줄거리인데, 작가는 어디서 소재를 얻었을까.

 

『토지』를 완성하기 전에 박경리는 하동에 가본 적도 없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로 줄거리를 구상한 뒤 지도에서 배경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다가 지리산 남쪽 평사리를 발견했던 것뿐이다. 『토지』를 마치고 평사리에 들렸던 작가가 “마을이 상상했던 모습과 흡사해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물론 그때 세트장은 없었다. 훗날 최참판댁을 직접 본 박경리는 되레 불편한 심기를 남겼다.

 

“다만 죄스러움이 가끔 마른 침 삼키듯 마음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필시 관광용이 될 최참판댁 때문인데 또 하나, 지리산에 누를 끼친 것이나 아닐까? 하고^^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최참판댁 세트를 지을 때 본보기로 삼았던 고택이 남아 있다. 평사리에서 직선거리로 2.5㎞ 떨어진 정서리의 ‘화사별서(花史別墅)’다. 화사별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된 지방문화재다.

 

화사별서는 조선 개국공신 조준(1346∼1405)의 25대손 조재희(1861∼1941)가 1890년대 초반 지은 집이다. 화사(花史)는 조재희의 아호이며, 별서(別墅)는 농사 짓는 별장이란 뜻이다. 별장 터를 물색하던 조재희에게 나라의 풍수를 보는 국풍(國風)이 명당을 찍어줬다고 한다. 

 

돌아 오는 길 버스안은 조용할리 없다.

 

지금은 없어진 남강 휴계소 진주 지수면 남해안 고속도로에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하루 즐거운 나들이 길이였다.

무사히 귀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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