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산인 고려동유적지 자미화
고려 유민의 충절이 깃든 함안 고려동 유적지
오늘은 불사이군의 정신이 깃든 함안 고려동을 찾아 봤습니다.
함안 고려동 유적지는 고려 말 성균관 진사였던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은거한 곳으로, 그의 후손들이 600여 년간 지켜온 역사적 마을입니다.
이곳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유적지의 역사와 의미
이오 선생의 충절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의 벼슬을 거부하고,
황해도 두문동에서 결의한 ‘72현’ 중 한 사람으로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은거했습니다.
고려동의 상징적 공간
마을 입구에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담 안은 고려 유민의 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자미화(紫薇花)의 상징성
붉게 피는 자미화(배롱나무꽃)를 자신의 단심에 비유하며,
주요 건물에 ‘자미단’, ‘자미정’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매년 7월경이면 600년 수령의 자미화가 만개합니다
고려가 망하자 선생은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罔僕守義)의 결의를 표명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처를 찾던 중,
산간벽지에 띠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백일홍이 만발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마을의 터전을 일궜다.
그 자리는 오늘날 자미단(紫微壇)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 고려 유민의 충절이 깃든 함안 고려동 유적지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이오는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선에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 곳을 떠나 딴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전답을 개간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후손들의 터를 만들었다

📜 두문동서원 위패 봉인문
사진은 두문동 서원 위패 봉인문이며
선생의 유언을 받든 종손들은 19대 600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현재 이 마을에는 30호의 후손들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단성의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

🌿 배롱나무꽃 사이의 자미정
함안 고려동 유적지의 중심 공간 중 하나인 자미정(紫微亭)은
배롱무꽃 사이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자로,
고려 유민의 충절과 단심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미지 속 자미정은 전통 기와지붕과 정교한 목조 구조,
그리고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풍경 속에 분홍빛 자미화(배롱나무꽃)가 만개해 있어,
마치 시간 속에 멈춰선 듯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 고려동 유적지의 주택과 자미정의 역사적 흔적
현재 주택으로는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이
유일하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200년을 넘지 않았다.
자미정을 포함하는 종가는 비교적 정교하게 재건되긴 했지만
조선 초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 고려동 유적지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건축물들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전쟁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소실되거나 재건된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자미화와 고려동 유적지의 이야기
고려동 유적지의 배롱나무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연륜에 비해 수관이 풍성하고
수형이 아름다워 자미나무라고도 불리며,
그 꽃인 자미화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자미화의 상징성
- 이오 선생의 충절: 고려 말 충신 이오 선생이 고려에 대한 충절을 상징하는 꽃으로 전해짐
- 역사적 의미: 단순한 식물이 아닌, 고려의 정신과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음

🌿 사당이 있는 옆의 배롱나무는 보라색 꽃이 피어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사당 옆에 피어난 보라색 자미화가 눈길을 끕니다.

📍 불사이군의 정신이 깃든 함안 고려동 유적지
오늘은 불사이군의 정신이 깃든 함안 고려동을 찾아 봤습니다.
유적지 고려가 망하자 여러 현인들과 송도 교외의 두문동으로 들어가
망복수의의 결의를 표명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산인면 모곡리에 터를 정해 은거했습니다.
'두문불출'이란 말이 이때 생겨난 말인데,
두문동에 들어간 사람은 전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안에서만 있으니 나온 말입니다.
고려의 국운이 약해졌던 고려 말,
삼은으로 불리던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는
대표적인 고려 말의 충신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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