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출지 배롱나무(2023)
배롱나무 꽃의 명소 경주 서출지
연일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이지 않는 7월 하순, 경북 경주 서출지(書出池·사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배롱나무 꽃, 연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며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 이곳까지 온 사연인즉 경주 까지 달려온 것은 경주 남천의 교촌교와 문천교사이의 해바라기 촬영차 왔는데, 해바라기는 장마통에 다 녹아 시들어 버리고, 첨성대 부근에서 얼쩡거리다, 통일전 부근의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 습지생태관찰원 외나무다리, 배롱꽃의 명소 서출지로 이동 하였습니다.
경주 서출지는 남산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연못으로 신라 소지왕의 전설이 담겨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는데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긴 신하들이 따라가 보니 연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전했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 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해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풍속이 생겨 났다고 한다.
이요당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남산동)에 있는 서출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서출지 일대가 사적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요당(二樂堂) 임적(任勣:1612~1672)이 1664년(현종 5)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곳 서출지도 아직 절정 수준은 아니고 이삭줍기식 촬영입니다.
이리 저리 비켜 골라가며 촬영해야 했습니다.
서출지는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으로,
백련과 홍련의 연지와 연못 주변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의 절경으로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임적은 본관이 풍천(豐川)으로, 자는 공무(公茂), 호는 이요당이다. 임이현(任以賢)의 아들이다. 학문을 좋아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고, 빈민 다수를 구제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1663년 심한 가뭄이 닥쳐오자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땅 밑에서 물줄기를 찾아내 이웃에게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게 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고 한다.
이요당은 임적이 풍천임씨 종택 앞에 세웠다고 한다. 건립 당시만 해도 종택의 부속 별당과 같았다.
현재 서출지 뒤편 임적의 후손들이 살았다는 종택은 무량사라는 사찰로 바뀌어 있다
연꽃 잎은 무성한데 연꽃은 몇 송이 샐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기다가 관리 부족인지 연지 중앙에는 잡초만 무성합니다.
아직 이른감이 있어 아쉽지만 서출지에서 촬영을 마치고
동선을 경주시 손곡동에 있는 종오정 일원으로 옮겼습니다.